[글마당] 피아노 치는 여자*에게
피아노는 늘 육체를 다스리는 풍습에 젖는다 열 손가락으로 광! 광! 두들기는 말초신경의 뻔뻔함으로 육체를 거부하는 생리를 잘 알고 있는 피아노 치는 여자는 검정 속옷과 스타킹 어지러운 손가락 놀림 발밑에 눌리는 소프트 페달만으로 피아노는 충분히 남자의 함정이다 피아노 치는 여자 목 아래로 푹 파여 있는 아늑한 함정이다 육체는 육체끼리 영혼은 영혼끼리 따로 떨어진 연습실에서 음계 연습을 한다 머리를 잘 빗지 않는 남자를 자신에게 단단하게 묶어 두기 위하여 오늘도 밤늦도록 피아노 치는 여자여 이룰 수 없는 사랑, 저 싱싱한 페미니즘이 붉은 피를 흘릴 때 슬며시 고개를 드는 휴머니즘을 위하여 나를 때려다오, 피아노 치는 여자여 여지없이 나를 발로 짓눌러 다오 새까만 그랜드 피아노 소프트 페달처럼 * 피아노 치는 여자: 2004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오스트리아 작가 엘프리데 옐리네크(1946~)의 대표작 소설 제목. 서량 / 시인·뉴저지글마당 피아노 여자 그랜드 피아노 소프트 페달 손가락 놀림